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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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 우승오 기자
  • 승인 2012.07.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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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중략)…/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詩 ‘담쟁이’)

앞으로 중학교 교과서에서 ‘담쟁이’를 포함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볼 수 없을 뻔 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민주통합당 도종환 의원의 작품이 실린 중학교 검인정 교과서에서 도 의원의 작품을 뺄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명분이다.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평가원은 중앙선관위에 선거법 위반 여부를 질의했고, ‘위반이 아니다’는 해석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인정 교과서는 국가가 제정한 교과서 검인정 기준에 합격한 교과서로, 올해 중학교 검인정 국어 교과서로 채택된 출판사는 16곳이다. 이 중 금성출판사 등 8개 출판사가 도 의원의 작품 ‘흔들리며 피는 꽃’, ‘종례시간’, ‘담쟁이’, ’수제비’ 등을 수록했다.

평가원은 해당 출판사들에 보낸 공문에서 ‘국회의원 당선자의 작품이므로 부적절함’ 등의 이유를 들었다고 한다. 평가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합격 심사가 취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권고’ 차원을 넘어서는 ‘협박’에 가까왔다.

도 의원의 시가 게재돼 삭제 지시를 받은 A출판사의 중학교 1-2 국어 교과서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필 ‘아무나 가져가도 좋소’가, 중학교 1-1 국어교과서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수필 ‘내 삶의 가치’가 각각 수록돼 있다. ‘정치인이 아니어서 삭제할 필요가 없다’는 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판단이지만 정치인에 대한 ‘고무줄 잣대’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런저런 예를 들 가치도 없다. 아니꼬우면 여당 국회의원이 되라는 얘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어선 안 된다.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넘어야 할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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