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땅값 평당 최대 1억4천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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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땅값 평당 최대 1억4천만원?
  • 석희열 기자
  • 승인 2007.05.28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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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땅주인 시세의 5배 요구... '알박기' 근정 법개정 시급
 
▲ 일부 땅 주인이 매매가로 평당 1억4000만원을 요구해 논란이 일고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1가 1동 556-1 일대 아파트 건설 예정 터. 이곳에는 오는 2010년까지 중대형 아파트 566채가 세워질 예정이다.
ⓒ 데일리경인 석희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지역주민들이 주택조합을 꾸려 공동으로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치솟는 땅값에 휘청거리고 있다.

서울 성수1가 1동 556-1 일대 1만2000여 평의 주택건설 예정 터. 이곳 실수요자들로 구성된 성수1지역주택조합(조합원 340명) 사업이 암초를 만났다. 2010년까지 아파트 566가구를 지어 조합원에게 분양하려던 계획이 '고액 땅값'이라는 복병을 만난 것.

5%의 땅값이 95% 땅값의 1/3 차지

공동시행사인 남경아이종합개발주식회사가 집 지을 땅의 95%를 확보했으나 나머지 5%의 땅주인들이 버티는 바람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 5%에 해당하는 땅주인들은 시행사와의 협상에서 매도 자체를 거부하거나 지나치게 높은 땅값을 불러 논란이 일고 있다.

한 평에 1억4000만원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이는 2004년 땅을 판 조모씨 등의 평당 600만원에 비해 23배, 현 시세와 견주어도 4~5배 높은 액수다. 서울시가 2005년 6월 서울숲 옆 공원용지를 평당 최대 7732만원에 고가 분양한 후유증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매매가 이뤄진 240가구(340명) 1만1300평의 계약서를 분석한 결과, 지불된 땅값은 모두 1907억원. 한 평에 대략 1687만원에 거래된 셈이다. 반면 팔지 않고 있는 7가구(700평) 가운데 4가구를 실태조사 해보니 평당 6000만원~1억4000만원을 매매가로 제시했다. 평균 8760만원 꼴이다.

ㅈ아무개(30평 주택 소유)씨는 "억지로 사라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필요해서 그런 건데 1억4000만원이면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 내 땅 갖고 (조건이 맞지 않아) 안 팔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말했다. ㅈ씨는 땅값만 제대로 쳐주면 팔고 떠나겠다고 뒷말을 남겼다.

이러다 보니 시행사는 95%의 땅을 매입하고도 착공조차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사업용지의 100%를 소유하지 못하면 착공 및 분양승인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민간사업자는 땅을 강제 매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른바 '알박기'를 피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사업 지연과 추가 부담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 지난해 6월 매도확약서를 시행사에 제출한 ㅊ씨(토지 54.15평 소유)는 매도 조건으로 땅값 39억원 지급과 양도소득세를 사는 쪽에서 물도록 요구했다(왼쪽). 그러나 시행사는 이처럼 고액을 요구하는 일부 가구에 대해서는 다른 가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매매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법원에 조정신청을 내놓은 상태다.
ⓒ 데일리경인 석희열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국회는 지난해말 주택법을 일부 개정했다. 사업자가 대지면적의 80% 이상 사용권을 확보하면 지구단위계획 결정 고시일 10년 이전부터 땅을 갖고 있던 사람만 매도청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것.

그러나 10년 전부터 땅을 가진 사람이 버티면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여서 법령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소유자도 버티면 '알박기'... "매도청구 제외 대상 없애야" 지적도

 
 
  '알박기'란  
 
 
정보력을 갖춘 투기 세력이 개발 정보를 빼내 개발 예정지의 땅을 일부만 산 뒤 개발업자에게 땅팔기를 거부하며 버티다, 시세보다 몇 배 내지 몇 십 배 비싸게 되파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알박기'는 사업용지의 100%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는 법의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형법 제349조 부당이득죄에 해당된다.

최근에는 개발 예정지에 미리 알을 박아놓고 큰 보상금을 노리는 전통적인 수법뿐만 아니라 10년 이상 장기 소유자가 개발을 방해하며 버티다가 땅값으로 큰 돈을 챙기는 행위까지 '알박기' 개념에 포함시키는 추세다. / 석희열
 
 
현행법대로라면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경우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과 달리 땅주인이 매도를 거부하면 사업자는 막대한 웃돈을 주고서라도 땅을 매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사업용지 확보 문제로 사업이 큰 차질을 빚으면서 성수1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의 가슴엔 시름이 차곡차곡 쌓였다. 내 집 마련 꿈도 법령의 틀 속에서 조각나고 있다.

김연도 성수1지역주택조합 상무는 "서로 눈치 보며 늦게 계약하려고 하는 5% 때문에 사업이 장기 지연돼 은행이자만 연 100억원 이상 추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이런 사회적 비용을 줄일 법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정치권에 요구했다.

'알박기' 규제의 실익을 얻기 위해서는 소유 기간에 관계없이 매도청구권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토지 매입 비율이 95%를 넘을 경우 10년 이상 장기 소유자일지라도 매도를 거부하면 '사회적 알박기'로 규제하자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나오고 있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민간사업에서도 땅주인이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하면 강제 수용할 수 있는 입법화가 필요하다"며 "(성수동의 경우) 땅주인이 예전부터 그곳에 살았고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나타나는 효과가 결과적으로 '알박기'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박용석 박사는 "민간주택 사업의 경우 개인의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딜레마"라며 "'알박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부지매입 비율이 95%를 넘으면 소유기간에 상관없이 매도청구권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체 사업비에서 토지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현실의 '일등 공신'인 '알박기'는 분양원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다. 실제 성수1지역주택조합 사업의 경우, 시행사에 따르면 미계약 5%의 땅값 요구액(금융비용 포함 700억원 추정)이 계약한 95% 땅값의 36.7%를 차지한다.

수용권 남발은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

 
▲ 조합 분양권을 받기로 하고 땅을 판 사람들과 아직까지 팔지 않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사업 지연에 따른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동네 선후배들끼리도 서로 등을 지고 갈등하고 있다.
ⓒ 성수동 ㅊ사진관
 
하지만 매도청구권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사유재산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땅을 팔지 않을 권리가 보호돼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장영희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사유재산에 대한 수용권 남발은 옛날 개발시대의 유물로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대신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개발 지역 토지 소유주에게 양도소득세를 높게 물리면 된다"고 설명했다.

성수동에 198평의 땅을 갖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부모님 모시고 5대째 여기서 살고 있는데 돈을 줄 테니 떠나라고 하면 어디로 가라는 것이냐"면서 "땅값도 좋지만 애들 학교가 있고 대대로 삶의 터전인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시행사 쪽은 땅값 협상이 어렵게 되자 지난해 12월 남아 있는 7가구 13명을 상대로 땅값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냈다. 시행사는 또 매도자 가운데 17명을 '알박기' 수법으로 큰 돈을 챙긴 혐의(부당이득)로 검찰에 고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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