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맞은 대일외교, 조중동도 함께 자성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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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맞은 대일외교, 조중동도 함께 자성해야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8.07.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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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일본 정부가 중학교 사회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사실상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실었다.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하는 일본의 ‘독도 도발’에 정파와 이념, 계층을 떠나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으며, 정부의 단호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주요 신문들은 15일부터 관련 사설을 싣고, 일본의 도발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주문을 내놓았다. 조중동 역시 <일본의 독도 도발과 대한민국의 전략적 대응>(조선), <독도 대응, 단호하되 냉정하게>(중앙), <일본이 아무리 도발해도 독도는 한국 땅이다>(동아) 등의 사설을 실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한국 정부의 잘못도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대통령들은 집권만 하면 일본에 대해 ‘신(新) 시대를 연다’고 섣부른 선언을 하면서 국민에게 마치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인식을 심어 주었다. 제 도끼로 발등을 찍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 온 것”이라며 역대 정권의 대일 외교를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16일 <임기응변·무원칙이 ‘실용외교’인가>라는 사설을 싣고 “‘미래의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맺겠다’는 대일 외교 노선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로 풍비박산이 났다”고 비판했다. 사설은 “(외교는)상대방을 모르면서 무시하거나, 선의에만 의존한다면 백전백패”라며 이명박 정부에 대해 “‘임기응변에 기회주의’라는 의미로 전락한 ‘실용’이라는 말은 그만하고, 구체적인 외교 목표와 이행 방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중동이 일본의 도발을 규탄하고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는 것과 함께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일 외교, 특히 지난 4월 한일 정상회담을 다룬 자신들의 보도를 성찰하는 일이다.

“과거사 빠진 한일 정상회담” 긍정 평가했던 조중동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도 영유권 주장,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일본의 도발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웅변해 왔다. 따라서 우리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놓고 ‘불문에 붙인다’는 식의 메시지를 일본에 주어서는 안된다. 일본 정부를 오판하게 하고, 도발을 부추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일 외교 자세는 문제가 컸다. 지난 4월 18일 권철현 신임 주일대사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과거에 속박당하지도, 작은 것에 천착하지도 말라는 당부를 받았다”, “독도·교과서 문제는 다소 일본 쪽에서 도발하는 경우가 있어도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드러내지 말자”고 말했다. 그는 4월 23일에도 “미래가 좋아지면 과거의 잘못된 것도 어느 정도 용서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사 문제에)적개심을 드러내기보다 가슴에 묻고 무엇이 국익에 맞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4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한-일 신시대’를 열어가자고 합의했다.

그러자 4월 22일 조선일보는 <이명박·후쿠다가 함께 가는 ‘한·일 신시대’>에서 “두 정상의 합의는 앞으로 양국이 함께 달려가야 하는 목표와 수단을 모두 담고 있다”, “과거라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전(前) 정권의 한·일관계와 달리 미래를 내다보고 가자는 것” 등으로 치켜세웠다.
또 “한국에 실용적 새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도 내놓고 우익노선을 추진했던 고이즈미·아베 정권이 물러나면서 좋은 이웃이 될 여건이 갖춰진 셈”, “한국은 과거사(史)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일본은 일본인 납북문제가 북핵 6자회담 진전에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도 실용적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예”라며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을 ‘실용’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과거사 해결 없는 ‘신시대 선언’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서는 “양국이 진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서로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마지막 주춧돌은 건드리지 않도록 말과 행동의 자제를 실천하는 것이 한·일 신시대 개막의 첫걸음”이라고 당부하는 데 그쳤다.

동아일보도 <한일 ‘모처럼 맞은 봄’ 호혜의 싹 틔워야>에서 “두 지도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역사교과서 왜곡과 같은 민감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과거’ 대신 ‘미래’를 양국관계의 중심에 놓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각성이 중요하다”면서도 “우리 또한 역사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과거 정권에서처럼 섣부른 민족주의나 정치적인 동기로 반일(反日)감정을 조장 또는 방조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성숙한 한·일 동반자 관계의 길>에서 “한국과 일본이 ‘과거 역사’보다는 ‘미래 비전을 중시하는 새 시대를 열어가기로 합의했다”며 “이런 과정들이 순탄하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선 우려도 없지 않다”고 언급해 조선, 동아일보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또 한일 동반자 관계를 위해 일본은 독도 영유,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서 한국 국민을 자극하는 언행을 삼가야하고, “한국 정부도 만의 하나 대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 해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회피했다는 문제와 그에 따른 우려는 없었다.
오히려 중앙일보는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돈독한 유대감을 과시했다. 노무현·고이즈미 정권 시절, 정상 간 감정의 골마저 깊어져 사사건건 대치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두 정상의 돈독한 유대감은 “두 정상이 과거 정권과 다른 인식을 가졌기 때문”이라며, “이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은 직시하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미래를 만들자’고 강조해 왔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미래 지향적’ 태도를 추켜세웠다.

‘장미빛 한-일 신시대’ 우려했던 한겨레·경향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한-일 신시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4월 22일 한겨레신문은 사설 <제대로 된 한-일 신시대가 되려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는 일본이 할 일이고 (일본)정치인들의 (거북한) 발언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다. 어느 나라나 정치인은 개인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고 한 데 대해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용인하겠다는 뜻의 위험천만한 발언을 했다”고 크게 우려했다.
또 “새로운 한-일 관계로 나가려면 그동안 왜 불편한 상태에 있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며 “두 정상이 진정으로 한-일 신시대를 열고자 했다면 ‘실용’의 이름으로 과거를 어설프게 덮을 게 아니라 역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로 다짐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사설 <한·일 관계가 진정 ‘뿌리 깊은 나무’ 되려면>을 통해 “정상회담의 내용으로 볼 때 양국 정상의 바람대로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 관계, 성숙한 동반자 관계로 순탄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며 과거사 문제 회피, 동북아 지역에 대한 공동의 비전 부재 등을 우려했다. 아울러 “양국이 진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로 발전하려면 우선 과거사 문제를 일본의 ‘선의’에만 맡겨 두지 말고 실질적으로 해소하려는 노력을 계속해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미래’에 묻힌 과거사>라는 기사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보고 있다는 우려를 전한 뒤,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대일 관계를 설정할 경우, 스스로 내세운 말에 발목을 잡히고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가 지금이라도 한일관계의 현실을 직시하고 일본의 도발에 단호하게 맞서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용’을 내세워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고도 일본에게 뒤통수를 맞은 이명박 정부의 대일 외교 정책은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명박 정부의 대일 외교를 ‘실용’과 ‘미래’라는 말로 치켜세웠던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신문이 자신들의 보도에 대해 자성하지 않는 한 아무리 일본의 도발을 소리 높여 규탄하고, 뒤늦게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진정성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7월 1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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