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민주주의 열망’은 못보고 ‘싸움판’만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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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민주주의 열망’은 못보고 ‘싸움판’만 보았나
  • 김광충 기자
  • 승인 2009.06.1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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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0일) 서울광장에서는 6월 항쟁을 기념하는 범국민대회가 열렸다. 22년 전 국민들은 바로 그곳 시청광장에서 군사독재정권을 굴복시키는 민주주의 항쟁의 불을 지폈고, 그로부터 20년에 걸쳐 우리 사회는 후퇴 없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일궈냈다. 그리고 비록 민주주의를 ‘완성’시키지 못했지만 ‘절차적 민주주의’ 측면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수준의 민주화를 이뤘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출범 후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민주화의 증거’였던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는 훼손되었고, 공권력은 다시 비대해져 곳곳에서 인권 유린이 벌어졌으며, 권력의 분립이 무너졌다. 경찰과 검찰은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고, 법원에서는 재판 개입 사태가 벌어졌으며,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자리가 되었다. 여론은 무시되고 사회적 논의는 사라졌다. 오직 권력의 의지만 남았다.

잇따르는 지식인사회의 ‘시국선언’과 함께 어제 열린 범국민대회는 이명박 정권의 민주주의 후퇴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국민들의 열망이 다시 한 번 표출된 것이다. 15만에 이르는 시민들은 시청광장과 주변 도로를 가득 메우고 다시 ‘민주주의 쟁취’를 외쳤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번에도 국민들의 목소리를 찍어 누르려 행사를 막는데 급급했고, 대통령은 6월 항쟁 기념사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확고하게 뿌리내렸지만, 폭력을 앞세운 이념과 집단 이기주의가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있다”며 자성은커녕 ‘적반하장’의 주장을 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스르는 이 참담한 상황 앞에 공영방송 KBS가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바랐다.

KBS는 민주화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다. KBS가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을 벗고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뤄낸 민주주의 덕분이다. 그러나 KBS는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청부사장 이병순 씨를 들어앉히자마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권력 눈치보기’, ‘권력 홍보’에 앞장서는 KBS의 행태는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적나라하게 표출됐다.
우리는 KBS가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6월 항쟁 22년을 맞아 민주화의 역사를 돌아보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시도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공영방송’ KBS는 범국민대회에서 쏟아진 국민들의 목소리조차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과 시민들이 “싸움판을 벌였다”는 식으로 6.10기념 행사를 다뤘다. 10일 범국민대회를 다룬 KBS의 보도는 MBC는 물론, SBS 보다도 못했다.
 
KBS는 첫 꼭지 <6.10범국민대회…일촉즉발>(구경하 기자)에서 앵커멘트부터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광장을 벗어날 경우 즉각 해산시킬 방침이어서 충돌 가능성이 높다”며 ‘충돌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범국민대회에서 쏟아져 나온 연사들의 발언 내용, 시민 인터뷰는 아예 싣지 않았다. 그저 행사장 분위기와 상황 등을 언급하다가 “경찰은 집회참가자들이 광장을 벗어날 경우 만 여 명 이상의 경찰력을 동원해 즉각 해산작전에 돌입한다는 계획이어서 충돌이 예상된다”고 전하는데 그쳤다.
<하루종일 충돌>(이정민 기자)은 “싸움판으로 변한 서울광장의 하루 이정민 기자가 담았다”는 앵커멘트로 시작됐다. 보도는 시민·야당 의원과 경찰의 물리적 충돌 상황을 전하는데 그쳤고,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원인은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 이어진 <전국서 기념행사>(김민철 기자)는 부산과 광주, 대구 등 전국에서 열린 범국민대회 소식과 정부 기념식을 단순 전달하는데 그쳤다. 성찰과 자성 없는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SBS도 ‘하루 종일 몸싸움’이라고 제목을 달며 경찰의 행사 방해로 빚어진 물리적 충돌을 부각하긴 했다. 다만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참가자들의 주장과 시민인터뷰 등을 실었다는 점에서 KBS와 차이를 보였다.
<6.10범국민대회 강행>(이호건 기자)은 앵커멘트에서 “경찰은 이 행사를 불법집회로 규정했지만 주최측은 행사 개최를 강행했다”며 주최측이 행사를 ‘강행’했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보도에서 “참가자들은 결의문을 통해 현 정부가 검경을 동원해 강압 통치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 운영 기조 전환을 촉구했다”고 행사 내용을 간단하게라도 언급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면 안되도록 막아야겠다는, 지금 현실에 사는 국민의 하나로 책임감도 있고 해서 나왔다”는 시민인터뷰를 실었다.
<하루종일 대치..몸싸움>(김종원 기자)에서는 서울광장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 상황을 나열하며 “경찰이 무대 장비에 대해 반입을 통제하며 신경전을 벌인 것은 광장 시설주인 서울시가 정치적 행사를 위한 시설물이 설치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주최측은 6.10 항쟁 정신을 계승하고 현 정부에 대해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대회라며 대회 장소로 서울 광장을 고수했다”고 전하는데 그쳤다.
 
그나마 MBC는 KBS, SBS에 비해 범국민대회의 취지와 내용을 상세하게 전했다.
<6.10대회 민주주의 후퇴 성토>(이호찬 기자)는 촛불로 가득찬 서울광장을 배경으로 “뒤로 보시는 것처럼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채 한결 같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했다”는 앵커멘트로 시작했다.
보도에서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던 박종철, 이한열 열사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들의 목숨 대신 얻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며 “군사 독재 시절에 최루탄으로 국민의 입을 막고,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법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으려 한다”는 이한열 열사 어머니의 발언을 실었다. 또 ‘대학 다닐때 민주쟁취 독재타도가 유일한 구호였는데 22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다’는 시민인터뷰를 실어 대회의 주장과 분위기를 충실하게 실었다.
<긴장..충돌>(최훈 기자)에서는 서울광장에서 빚어진 물리적 충돌을 보도했지만 “(경찰이)6.10 범국민 대회 행사 진행을 위한 차량과 장비 반입을 막으면서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했다”고 원인을 전하고, “6.10 민주 항쟁 기념행사를 놓고 평화적인 행사를 보장하라는 측과 불법 집회여서 허용할 수 없다며 경찰이 맞서면서 곳곳에서 몸싸움이 이어졌지만,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다”고 전했다.

<전국 동시 개최>(강나림 기자)에서도 부산과 광주, 대구 등에서 열린 범국민대회 소식을 전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것에 대해 분명히 사과해야 하고 국민의 소리에 대해 귀를 열어야한다”, ‘국정운영이 못마땅하고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부산과 광주 시민의 인터뷰를 실었다.
<촛불로 뒤덮인 서울광장>(송양환 기자)에서는 서울광장 현장을 연결해 “서울광장을 빈틈없이 메우고, 덕수궁 앞 왕복 11차선 도로까지 인파로 가득 찬 상태”, “회사 근무를 마치고 나온 직장인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며 수많은 국민들이 범국민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MBC도 이명박 대통령의 6.10 기념사 발언에 대해서는 단신 <“위법·폭력 안된다”>에서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
 
‘이병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우리는 수없이 KBS의 각성을 촉구해왔다. ‘이대로 가면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 ‘KBS로고를 붙이고 취재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이병순씨가 사장으로 앉은 지 1년도 되지 않아 KBS 기자들은 취재현장에서 시민들의 냉대를 받고, 인터뷰를 거절당하며, 때로 쫓겨나는 모욕적인 상황을 맞았다.
지난 8~9일 KBS기자협회는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 신임투표를 실시했다. 보도본부 소속 기자 260여 명 중 219명이 투표에 참여해 180명(82.2%)이 김종율 보도본부장을 불신임했고, 고대영 보도국장에 대해서는 기자 138명이 투표에 참여해 129명(93.5%)이 불신임했다고 한다. 기자들이 현장에서 느낀 위기감과 자괴감이 내부비판으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KBS는 “불신임 투표는 사규상 성실 의무 위반과 품위 유지 의무 위반에 해당된다”며 징계를 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 역시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교수들의 잇따른 시국선언을 ‘보혁대결’로 호도하며 본질을 흐리고, 민주주의 회복을 요구하고 봉쇄된 광장을 열려는 국민들의 노력을 ‘싸움판’으로 매도했다. 오직 ‘이명박 정권에게만 잘 보이겠다’는 발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KBS가 끝내 국민의 분노를 외면하겠다면, 국민들의 심판도 더 가혹해질 것이다. KBS가 정권에 붙어 국민을 외면했던 시절, KBS는 정상적인 ‘방송사’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아프게 돌아보기 바란다. KBS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아직 다 표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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