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이 있지만 학벌이 없다고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라면, 학벌 좋은 자 중에 실력 있는 자를 가려 내는 변별력이 고장난 사회라면 학벌 사기를 도덕성 운운하며 심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언동일 수 밖에 없다.
대학사회가 학벌을 가장 중시하는 곳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학벌 사기보다 더 위험하고 반도덕 적인 것은 학력 사기 이며 능력없는 자가 자리만 차고 앉아 있는 것이다.
오히려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는 상당기간 학벌 사기가 있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자연 우리는 학력과 학벌 변별력을 구하고 결국 갖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벌사기는 단지 증상일 뿐 고쳐야 할 질병이 아니다.
설혹 그것이 질병으로 진단된다 해도 우리 사회가 학력 변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실력자에게 단지 학벌이 없다는 이유로 기회를 주지 않는 병보다 적어도 심각한 병은 아니다. 이 고질적인 병이 고쳐지지 않는 한 학벌 사기는 계속될 것이다.
반면 질병이 고쳐지면 증상은 저절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증상에 메달려야 하나. 엄격히 책임을 묻는 방식으로 학벌사기를 다소 감소시킬 수 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수단은 잠시 억누르는 효과가 있을 뿐 병의 뿌리를 뽑아 내는 근본적인 수단이 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학력이 있으면 학벌을 무시하는 사회 풍토다.
어떤 노력을 해서 어떤 학벌을 따냈건 지금 이 순간 실력이 없으면 실력있는 자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에게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사회구조를 갖춰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대학에 굳이 안 갈 것이고, 학벌 사기는 저절로 잦아들 것이다. 마치 빛이 들면 어둠이 사라지듯.
학벌 사기에 대한 철퇴, 현재로선 대단히 위험한 한 일이기도 하다. 고열이 나면 열을 없애는 식인데 이런 처방은 때때로 더 큰 병을 불러 들인다.
열은 나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는 것이다.
따라서 열을 강제로 내려도 좋은 경우는 반드시 근본적인 후속조치가 즉각적으로 뒤따를 때 뿐이다.